1. 아무 일도 없는데, 이상하게 멈춰 있는 시간
오후 3시.
이상하게 이 시간대는 늘 조금 멈춰 있는 것 같다.
해는 너무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애매한 각도에 걸려 있고,
밖에선 누군가 걷는 발소리도, 멀리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도
다 조금씩 느리게 들린다.
뭔가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멈춰 있는 느낌.
오늘도 그랬다.
커피를 다 마시지도 못했는데,
컵에 비친 그림자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던 것도 아니고,
생각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그냥… 멈췄다.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내 마음은 잠깐 멈춘 것 같은.
그럴 때면 괜히 머릿속이 조용해진다.
누구 생각도 안 나고, 걱정도 잠깐 쉬어간다.
그냥 ‘지금’만 존재하는 순간.
누군가는 이걸 ‘멍때리기’라고 하겠지만
나는 이 시간을 꽤 좋아한다.
이 짧은 멈춤이 하루를 정리하는 숨 같은 느낌이라서.
가끔은 삶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서
이런 오후 3시 같은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일 없이,
잠깐 멈춰 있는 그 평온함이 좋다.
누가 시계의 초침을 살짝 눌러둔 것 같은 그 기분.
그게 오후 3시의 공기다.
2. 햇빛도, 공기도, 나도 살짝 느려지는 순간
오후 3시의 햇빛은 뭔가 다르다.
아침보다 부드럽고, 저녁보다 따뜻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내 손등에 닿으면,
그 온도만으로도 마음이 잠깐 풀린다.
그때는 세상이 조용히 숨을 고르는 것 같다.
자동차 소리도 멀게 들리고, 사람들의 말소리도 낮아지고.
모든 게 약간 ‘슬로우모션’처럼 느려진다.
이 시간에는 괜히 감정이 예민해진다.
별일 아닌 생각들이 조금씩 떠오른다.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나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이상하게 답을 찾으려고 하진 않는다.
그냥 그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도록 둔다.
햇빛에 비치는 먼지를 바라보다 보면
나도 그 속에 떠 있는 하나의 입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히 여기에 있는 느낌.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된다.
크지 않아도 괜찮고, 바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이 시간의 공기에는 그런 여유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평범한 오후일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좋아’
라고 말해주는 시간이다.
3. 다시 움직이기 전의 짧은 멈춤
오후 3시의 고요함은 오래 가지 않는다.
4시가 가까워지면 햇빛이 조금씩 기울고,
사람들이 다시 분주해진다.
그 짧은 사이에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해야 할 일들, 답장하지 못한 메시지,
그리고 내일의 걱정들까지 차례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후 3시의 잠깐 멈춰 있던 시간이
나를 조금 다르게 만들어 놓는다.
그 짧은 고요 덕분에 하루가 덜 무겁게 느껴진다.
마치 잠깐 쉬었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느낌.
조용히 멈췄던 마음이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살다 보면 멈춰야 할 순간이 꼭 있다.
그게 피로해서든, 지쳐서든,
혹은 그냥 이유 없이 멈춰도 괜찮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무너진 것도, 빛났던 것도, 다 잠깐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후 3시를 좋아한다.
하루 중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나다운 시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는 시간.
그게 나한테는 잠깐의 안식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
오후 3시의 햇빛 아래,
시간은 잠깐 멈췄지만, 마음은 다시 움직인다.
그게 오늘 내가 느낀,
‘시간이 멈춘 듯한 오후 3시의 기분’이다.